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는 오스트리아 작곡가로, 역시 작곡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아들이다. 왈츠의 왕(Walzerkonig)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슈트라우스의 춤곡들은 당대 유명 작곡가들까지 사로잡았는데 요하네스 브람스의 경우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악보를 받아 들고는 “불행히도 브람스의 작품이 아니군요”라고 할 정도로 춤곡에 특화된 재능을 부러워했다. 실제로 브람스는 수시로 슈트라우스의 집과 휴양지에 방문해 친교를 나누던 사이였다.
브람스와 극점에 서 있던 리하르트 바그너도 브람스만큼은 아니었지만 슈트라우스 춤곡의 애호가였고, 바이로이트에 축제극장과 자택을 짓기 위해 땅을 살 때 지주에게 마찬가지로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들려주면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도 했다. 이런 탓에 슈트라우스 생전에 신문 등에 실린 풍자화나 실루엣을 보면, 브람스건, 바그너건 브루크너든 대립파벌을 초월한 당대 유명 작곡가들이 슈트라우스 악단의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
생애
1825년 10월 25일 빈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음악에 자질을 보였으나, 부친은 요한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1844년 자기의 악단의 결성을 하고, 19세 때 레스토랑에서 자기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가, 184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악단도 병합하였다. 자휘자, 작곡가로서 인기를 높이게 된다. 1851년부터는 악단을 인솔하고 세계 연주여행을 떠나 큰 호응을 얻는다. 1863년에 가수 헨리에테 트레푸츠와 결혼하였다. 1855년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 극장에서 하기 음악회의 지휘자가 되었으며, 1862년 자기의 오케스트라를 형제에게 양보하고 작곡에 전념하였다. 1864년에는 오페레타(희가극)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가 빈을 방문하고 인기를 모으고 있었으므로, 오펜바흐의 왈츠 <석간>에 대항하여 <조간>을 썼다.
1870년경부터 오페레타도 만들기 시작하였고, <인디고와 40명의 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오늘날 <천일야화>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872년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에서 지휘하였다. 1874년 빈에서 초연됐던 오페레타 <박쥐>는 빈 오페레타의 최고의 명작이 되었다.
1878년 부인이 사망, 그 뒤 다시 결혼하였다.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오페레타는 전부 합쳐서 16곡에 이르나, <박쥐>를 빼고는 <베네치아이 한밤>과 슈트라우스의 만 60세 탄생을 축하하여 1885년에 초연된 <집시 남작>이 지금도 애호되고 있다. 또한 <빈 기질>이라고 제목 붙여진 오페레타는 슈트라우스의 유명한 음악을 이어 모아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슈트라우스 자신이 작품을 보고 승인하여 주었다. ’ 왈츠의 왕‘으로서 슈트라우스는 500곡이 넘는 왈츠, 폴카, 그 밖의 곡을 남기고 있다.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봄의 소리>, <빈 숲 속의 이야기>, <남국의 장미>, <황제>, 폴카 <천둥과 번개>, <재잘재잘 (트리치-트라치)>등도 유명한다.
왈츠(Waltz)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예술가의 생애
빈 숲 속의 이야기
술과 여자오 노래
천일야화
빈 기질
봄의 소리
황제 왈츠
남국의 장미
가속도
조간신문
빈 봉봉
폴카(Polka) & 갈롭(Galopp)
안넨 폴카
트리치 트라치 폴카
무궁동
빠른 폴카 ‘관광열차’
빠른 폴카 ‘바람기’
빠른 폴카 ‘천둥과 번개’
사냥에서 폴카
피치카토 폴카
행진곡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회복을 축하하는 행진곡
회전목마 행진곡
나폴레옹 행진곡
페르시아 행진곡
이집트 행진곡
오스트리아 만세!
러시아 행진곡
카드리유: 4쌍 이상의 사람들이 네모꼴로 이루며 추는 춤곡
디노라 카드리유
가면무도회 카드리유
노래 카드리유
무대작품
오페레타 <박쥐>
오페레타 <심플리치우스>
오페레타 <베네치아의 하룻밤>
오페라타 <빈 기질>
예전에 작곡해 둔 춤곡들을 재편성해서 만든 작품으로 슈트라우스 사후 지휘자 겸 작곡가 아돌프 뮐러 2세가 완성
코믹 오페레타 <집시 남작>
발레 <신데렐라>
생애 말년에 시도한 첫 발레였지만, 관현악 편곡 작업 직전 세상을 떠나면서 작곡가 요제프 바이어가 이듬해에 완성